
안녕하세요.
최근 불타오르는 주식시장과 시작된 2026년, 바야흐로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입니다.
매일 아침 뉴스에서는 사람을 닮은 휴머노이드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자율주행 택시가 거리를 누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기술의 발전에 환호하고,
또 누군가는 ‘나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깊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기술에 대한 규제 재정에도 많은 고민이 필요한 법이죠.
하지만 역사의 시계를 150년 전으로 돌려본다면,
우리는 현재와 닮은 풍경을 영국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그곳에는 로봇과 AI 대신 검은 연기를 내뿜는 거대한 기계가 있었으며,
잘못된 규제로 국가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벤츠가 질주할 때, 붉은 깃발을 들고 기어가야 했던 나라.
산업혁명의 종주국이었으나 스스로 왕좌에서 내려온 영국,
그리고 그 몰락의 신호탄이었던 적기조례(Red Flag Act)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동차의 역사가 1886년 독일의 칼 벤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앞선 1830년대, 영국의 도로는 이미 기계들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증기기관 개량에 성공한 제임스 와트의 나라답게,
영국은 이미 증기기관을 이동 수단에 접목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죠.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당시 영국의 거리에는 증기 버스들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월터 핸코크가 만든 이 버스는
최대 시속 38km까지 속도를 냈고, 지치지도 않고 여러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습니다.
당시 마차보다 빠르고, 운임조차 절반 수준이었던
이 혁신적인 발명품의 등장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바야흐로 영국 주도의 '마이카 시대'가 활짝 열리는 듯했죠.
하지만, 이 검은 연기를 내뿜는 괴물을 보며 이를 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수백 년간 영국의 도로를 지배해 온 '마차 사업 조합'과
막대한 자본을 들여 철로를 깔아놓은 '철도 재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증기 자동차는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앗아갈 끔찍한 재앙과도 같았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기득권 세력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첫 번째 무기는 당연히 ‘돈’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당시 영국의 유료 도로를 관리하던 턴파이크 트러스트(통행료 징수 기관)는
노골적으로 마차 업계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무거운 증기 자동차가 도로를 파손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살인적인 통행료를 부과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리버풀에서 프레스코트 구간을 지날 때,
마차가 4실링을 낼 동안 증기 버스는 무려 48실링을 내야 했습니다.
12배에 달하는 요금 폭탄. 이는 사실상 "도로에 나오지 말라"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죠.

하지만 진실은 달랐습니다.
좁고 딱딱한 바퀴와 말발굽이 도로를 찍어 누르는 마차가 오히려 도로 파손의 주범이었고,
승차감을 위해 폭이 넓은 바퀴를 장착한 증기 버스는 도로에 무리를 덜 주었습니다.
허나 이권 다툼 앞에서 팩트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흐름을 막을 수 없자,
결국 영국 의회는 1865년, 세계 자동차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법안인 기관차법(The Locomotive Act),
훗날 '적기조례'라 불리게 될 법을 통과시킵니다!

성인 남성의 평균 보행 속도가 시속 4~5km입니다.
즉, 이 법은 “자동차는 절대로 사람보다 빨리 달려서는 안 된다”라고 법으로 못 박은 것입니다.
달리기 위해 발명된 기계를, 깃발을 든 사람의 뒤꽁무니를 쫓아 엉금엉금 기어가게 만든 셈이었죠.
당시 증기차는 이미 시속 30㎞를 넘나들던 시대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이 법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는지 보여주는 관련 일화로,
적기조례가 폐지되기 직전인 1896년 1월 웃지 못할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월터 아놀드라는 영국인이 벤츠 자동차를 수입해 기수없이 도로를 질주하다 경찰에게 붙잡힌 것입니다.
당시 그가 낸 속도는 무려 시속 13km(8마일)로, 제한 속도를 4배나 초과한 엄청난(?) 폭주였습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를 추격해 검거한 경찰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법을 위반한 과속 자동차가 자전거에게 따라잡히던 시절, 당시 영국의 씁쓸한 자화상이었습니다.
결국 월터 아놀드는 세계 최초로 과속 딱지를 떼인 사람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영국 정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적기조례를 폐지하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그들은 왜 혁신이 될 수도 있는 사다리를 걷어찼는가?
도대체 영국 의회는 왜 이런 자해적인 법안을 통과시켰을까요?
당시 의회 속기록을 보면 표면적인 이유는 '안전'과 '도로 보호'였습니다.
"증기차의 보일러가 폭발할 수 있다", "말들이 놀라 날뛴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역사학자는 이 법 뒤에 거대한 '이익집단의 카르텔'이 존재했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어느 의원이 마차 조합에서 얼마를 받았다"는 식의 구체적인 장부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의회 구성원 다수가 철도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거나 마차 관련 이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법의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마차와 보행자의 권익 보호에만 치중되어 있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학자들은 이를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로 해석합니다.
'시민의 안전'은 그저 듣기 좋은 명분이었고, 실상은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막으려던 기득권의 밥그릇 지키기였던 것입니다.
한때 기계 공업의 제왕이었던 영국은 이후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독일과 미국에게 영영 빼앗기고 맙니다.
비록 후속 주자이지만, 영국 대표 자동차 브랜드라 할 수 있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미니 조차
오늘날은 대부분 독일의 BMW나 폭스바겐 그룹의 소유라는 점에서
역사의 비정한 아이러니를 볼 수 있죠.

기존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려는 마음에,
새로운 변화를 무조건 막아선다면 자칫 더 큰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AI, 자율주행, 로봇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물결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안전장치 마련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마치 과거의 '붉은 깃발'처럼 "새로운 기술은 기존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며
변화를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공감 더하기 > 힐링카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 마음대로 무비차트FIVE (0) | 2025.12.29 |
|---|---|
| 터프함의 상징, 세계적인 오토바이 브랜드 이야기 (0) | 2025.10.24 |
| 내 마음대로 순위발표! 무비차트FIVE (3) | 2025.08.26 |
| 자동차의 아버지, 벤츠의 첫걸음 (0) | 2025.06.23 |
| DAEJOO·KC WEBTOON (0) | 2025.04.22 |